[책]빚으로 지은 집: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책과 영화

편집부로 오면서 책 읽을 시간이 생겼다. 좋은 책을 읽은 뒤엔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할 생각이다. 좋은 책을 소개할 겸해서. 그 첫 번째가 <빚으로 지은 집: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이다. 2008년 금융 위기와 그로 인한 대침체의 원인을 '가계 부채'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위험을 분산하기보다, 가진 게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집중시키는 부채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비판한다. 대안으로 채무자와 채권자와 위험을 나눠 갖는 새로운 부동산 담보 대출 방식도 제안한다. 이 책은 2014년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최종 후보작이었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 등 국제적 사례에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라는 현상이 선행한다." 대공황과 대침체 직전 모두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 두 사건 모두 가계의 소비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됐다. 2008년 대침체 직전 미국의 가계 부채를 보면,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가계 부채 총액은 두 배로 늘어 14조 달러를 기록했다. 이와 견줄만한 사례는 미국 역사에서 딱 한 번 있었다. 대공황 초기다. 1920년부터 1929년 사이 도시 지역 주택 담보 대출은 세 배가 증가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더 가난해지는가? 
대침체 시기에 집의 가치는 5.5조 달러나 떨어졌다. 과연 이 충격을 모든 주택 소유자들이 똑같이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집값 하락은 자산에서 빚을 뺀 '순자산'이 적은 가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준다. 순자산 2만 달러에 8만 달러를 빌려 10만 달러짜리 집을 샀다고 치자. 그런데 집값이 떨어져 자산 가치가 8만 달러가 됐다. 집값은 20% 하락했지만 순자산은 100% 줄어 제로가 된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에 '우선 청구권'이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집을 팔아도 8만 달러를 모두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순자산 최하위 5분위 계층의 순자산은 3만 달러에서 사실상 제로가 됐다. 이 그룹의 레버지리(집값 대비 대출 비율) 비율은 거의 80%에 달했기 때문이다. 즉 10만 달러짜리 집을 샀지만 8만 달러는 빚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집 외에 다른 금융자산도 거의 없었다. 반면 상위 20퍼센트 주택 소유자의 레버리지 비율은 7%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그룹의 순자산은 주식, 펀드 등 비주택 자산에 집중돼 있다. 

부채의 부정적 효과는 단지 빚은 진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압류'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 하면 대출 기관은 그 집을 압류해 서둘러 팔아버린다. 이런 투매 현상은 인근 지역의 모든 집값을 동시에 하락시킨다. 결과적으로 재정적으로 건전했던 주택 소유자마저 제 값을 받고 집을 팔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압류의 외부효과다.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 채무는 '불평등'과 따로 떼어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집값이 폭락하면 순자산이 적은 채무자의 손실이 가장 크므로 불평등은 악화된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가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지는 이유
순자산이 적은 주택 소유자가 집값 하락의 충격을 받으면 '소비 지출'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자산이 적어 빚을 많이 진 사람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기 때문이다. 소득이 적을 수록 추가 소득 중 소비에 쓰이는 돈의 비율이 크다.  실제로 2006년 주택 담보 대출 비율이 90% 이상인 가계의 한계 소비 성향은 30% 이하인 가계보다 세 배 이상 컸다. 즉 집값 하락은 빚을 많이 진 사람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이들은 한계 소비 성향이 크기 때문에 소비 지출을 더 크게 줄인다. 저자는 이를 '레버드 로스'(levered losses) 이론이라고 이름 붙인다. 빚 때문에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가 증폭되는 손실을 의미한다. 이렇게 줄어든 총수요가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졌다. 수요 감소로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고 생산을 줄이면서 2007년 3월부터 2009년 3월 사이 미국의 민간 일자리는 6백만 개가 사라졌다. 

일부 경제 이론은 이런 식의 총수요 감소에도 실업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시장은 자기 조정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 지출이 급격히 줄 때, 경제가 파국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이자율의 하락이다. 채무자들이 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이자율이 떨어진다. 반대로 자산가들은 저금리로 소비를 늘려 채무자의 소비 감소를 벌충한다. 또 다른 방법은 상품의 가격 하락으로 소비를 촉진하는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에서 이런 조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자율은 아무리 낮춰도 명목금리가 마이너스일 수 없다. 또 상품 가격의 하락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기업이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임금을 깎으면서 빚을 진 가계가 더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대공황 당시 어빙 피셔가 '부채 디플레이션' 싸이클이라고 부른 현상이다. 

저자는 케인스의 말을 빌려 시장의 자기조정능력을 과신하는 주류 경제 이론을 비판한다. "가격이 신축적이라고 주장하는 고전학파 이론은 경제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경제가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와 당위를 혼돈하기 시작하면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주류 경제 이론 : '은행 중심적' 시각 
대침체의 원인에 대해서도 주류 경제학은 다른 가설을 설파한다. '은행 중심적' 시각이다. 진짜 문제는 금융 부문이 약화되면서 자금의 흐름이 멈춰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지출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 정부는 리먼이 파산하도록 그냥 둬서는 안 됐다. 반대로 채무 가계에 대한 지원 정책은 제로섬이라고 여긴다. 채무를 탕감해주면 은행의 건전성을 해치고 이는 다시 경제에 해가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탄탄한 통계를 근거로 이런 주장을 깨나간다. 먼저 주택과 내구제의 소비 감소는 리먼이 파산하기 2년 전인 2006년부터 시작했다. 또 금융 위기 당시 소규모 기업 중 '자금 조달'이 문제가 된 기업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게다가 2009년부터 은행 시스템의 불안 요인이 사라졌음에도 대출은 전혀 늘지 않았다. 오히려 급감했다.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못 해서, 은행 시스템의 마비로 어려움을 겪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은행 중심 시각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이들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 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은행 중심 시각이 지배적인 한, 대책은 온통 은행을 구제하는 데 맞춰지기 때문이다. 가계 부채 문제는 무시된다. 실제로  금융 위기 당시, 재무부가 가계 부채 부담을 완화하는 데 사용한 자금은 전체의 2% 미만이었다. 반면 금융 기관 구제에는 75%를 썼다.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는 총수요 진작을 위해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계층에서 높은 계층으로 부를 이전해야 한다. 정치가 움직였어야 했다. 정부가 임명한 신탁 관리자에게 모기지 대출 조건에 대한 재협상 권한을 부여하고, 파산법을 개정해 채권자 동의 없이도 주거 목적으로 사는 집에 대해선 파산 법원이 채무를 재조정하는 정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은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대침체 가장 심각한 정책 실수가 됐다. 


가계 부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들은 주택 시장 붕괴의 손실을 채무자가 모두 감당하는 게 아니라 채무자와 채권자가 '고르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이것이 이 책의 빛나는 점이다. 우리는 채무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데 익숙하다. 저자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공평한 손실 부담의 필요성을 논증한다. 

먼저 공평한 분담이 의미하는 것은 이렇다. 집값이 떨어질 경우 자산에서 순자산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채무자가 부담을 지는 것이다. 즉, 집값 10만 달러 중 5만 달러가 순자산이라면 집값 하락시 채무자는 손실액의 50%만 부담한다. 나머지 50%는 대출 기관이 부담을 진다. 이득이 나도 마찬가지다. 집값이 오르면 그 이득도 같은 방식으로 채무자와 채권자가 나누는 것이다. 

저자가 채무 문제에 '공평한 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거품의 형성과 가계 부채에는 금융기관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거대한 가계 부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중요한 변화는 예전에는 대출 받기 쉽지 않았던 사람들마저 쉽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증권화'가 있었다.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외환 보유고를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미국 달러화 표시 자산을 대규모로 사들였고, 그 결과 미국 경제에는 엄청난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재앙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이 막대한 투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미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에 뛰어든 것이다. 

주택저당증권은 "여러 모기지 대출을 모아서 하나의 풀을 만들고 여기에서 나오는 현금 흐름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모기지 대출 기관은 위험을 증권 구매자(투자자)에게 떠넘기고, 수수료까지 챙긴다. 이들 기관은 투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부실한 모기지까지 끌어 모아 증권화했다. 기존에는 정부 지원 기관이 적격 모기지만을 이용해 증권화를 했기 때문에 신용 위험이 적절히 통제됐다. 하지만 금융 위기 직전 민간 부문 증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 2002년에 20%에서 2006년 50%를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유입된 자본이 증권화 과정을 거쳐 한계 대출자들에게 모기지 대출로 공급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 부문은 부실 모기지를 안전 자산으로 재포장 하기 위해 '트렌칭'이란 방법을 사용했다. 트렌칭은 모기지를 쪼개 파는 방법이다. 

빚은 부동산 거품을 더 크게 키운다. 거품은 전망의 문제다.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와 오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 사이에서 한 쪽으로 무게 중심으로 움직이는 문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비율 문제다. 중요한 여기서 빚의 역할이다. "빚은 낙관주의자들이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증대시킴으로써 자산 가격의 상승을 용이하게 해준다." 빚을 낼 수 없다면 제 아무리 낙관주의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 이상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빚을 내면, 자신이 가진 그 이상을 투자할 것이고, 이게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이다. 일부에서 '야성적 충동'이 거품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부채중심적 시각에서 볼 땐 야성적 충동도 빚을 낼 수 없다면 거품을 만들어내지 못 한다. 

통화정책? 재정정책?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 각 나라 정부들은 '돈 좀 빌려서 쓰라'고 아우성이다. 금리를 낮춰고 통화 공급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소비는 좀체 늘지 않는다. 저자의 관점에서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가계 부채다. 따라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보다 가계 부채 재조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 채무재조정엔 세금도 들지 않는다. 채무재조정은 경제 주체들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채권자들도 경제적 파국의 결과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이들에게 손실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경제 위기에 원인을 제공한 자를 징계하는 측면도 있다." 반대로 대형 은행들에 대한 구제 금융은 시장 경제의 원리 중 하나인 '과실 책임주의'를 위배하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기 전에 잠재적 채무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

[취재일기]육아휴직 했더니 저성과자? 퇴사 압박까지 살며 생각하며

<육아휴직 했더니 저성과자? 퇴사 압박까지> 

지난 1월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관련 행정지침을 발표한 이후 나의 관심은 과연 이 지침이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쏠려있었다. 마침 인터넷에서 우연히 관련 기사 하나를 봤다. 모 통신사 기사였다. 유통 대기업인 SPC그룹에서 '시장조사팀'이라는 상시적인 대기발령 부서를 운영하며 이곳에 저성과자를 배치한 뒤 퇴사를 종용해왔다는 게 골자였다. 

좋은 기사라고 생각했다. 보도 내용이 모두 맞다면 저성과자의 해고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저성과자 해고라고 말은 많지만 사실 노동조합에서도 마땅히 아는 사례가 없을 때가 많다. 일단 노조가 조직돼 있는 사업장은 그나마 노조의 교섭력 때문에 막무가내 해고를 하진 못한다. 또 양대노총의 사업장은 상당수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인 게 사실이다. 노동 조건이 그나마 낫다는 얘기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부당 해고를 제보하거나 대외적으로 폭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취재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언론이 진짜 노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되뇌이는 말이지만 어디에든 '균열'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부당함을 못 견디고 송곳처럼 튀어나와 해당 언론사에 제보를 한 것으로 보였다. SPC그룹은 노동조합도 없는 곳이다. 다른 기자가 먼저 보도한 내용을 뒤따라가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이 사건만큼은 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으면 뭔가 새로운 게 나올지로 모를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해당 직원들과 연락이 닿았다. 모두 지난해 11월 24일 이른바 '시장조사팀'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4년차부터 10년차 이상까지 다양했다.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시장조사팀은 단순한 대기발령 부서가 아니었다. 이들은 매일 서울 양재동 SPC본사로 출근했다. 하지만 자기 자리가 없었다. 다른 직원이 외근을 나가면 그 자리를 잠시 차지하고 있다가 다시 빈 자리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회사는 사무실 공간이 너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이들 직원 3명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걸까? 그룹 연매출이 2조 7천억 원인 회사에서? 미스터리다. 시장조사팀이 퇴사를 종용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순수하게 다른 부서로 옮겨가기 전 대기하는 부서라면 최소한 직원들의 자리는 제공하는 게 상식적이다.  

이들은 업무용 노트북도 없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저마다 내부 전산망을 갖추고 있다. 그 안에서만 각종 문서의 기안과 결제가 이뤄진다. 보안 탓에 내부 전산망 접속은 업무용 컴퓨터에서만 가능하다. 업무용 노트북을 회수했다는 것은 아무런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 직원은 내부 전산망에 접근이 안 되다보니 연말 직원 평가 때 자신의 업적을 등록하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결국 시장조사팀에 발령난 직원 5명 중 2명이 퇴사했다. 하지만 남은 직원들은 출근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팀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우리가 이렇게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장은 그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이들의 출근을 체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조직 안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다. 

이제 핵심은 이들에게 부당한 퇴사 종용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정부 지침상 저성과자 해고 전에는 반드시 재교육과 전환배치 등 해고 회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저성과자 평가가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도 중요하다. 대기발령을 시킨 뒤 바로 퇴사를 종용하는 것은 명백한 지침 위반이었다. 정부의 행정지침은 그동안 판례의 형태로 흩어져 있던 저성과자 해고의 각종 기준들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 일반 직장인이 저성과자 해고 문제에 맞딱뜨렸을 때 관련 판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판례는 어디까지 개별 사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한 두 개를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노조가 조직돼 있는 곳은 그나마 조합원 교육이라도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노동권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초등교육 과정에서부터 단체 교섭을 배우지만 이 땅에선 먼 나라 얘기다.  그런 면에서 지침은 정당한 해고와 그렇지 않은 해고 절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 

나는 직원들에 대한 퇴사 종용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녹취파일을 입수했다. 직원들은 시장조사팀에 발령난 뒤 주기적으로 인사팀장과 면담을 가졌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50분이 넘었다. 그 대화를 모두 기록해뒀던 것이다. 참으로 현명한 행동이었다. 과연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퇴사 종용이 있었는지 녹취를 듣고 확인에 들어갔다. 인사팀장이 한 두 마디 지나가는 말로 퇴사를 권유한 것과 상부의 지시를 받고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퇴사를 권유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 팩트 조각과 실체적 진실는 구분해야 한다. 

인사팀장의 면담 요지는 매우 일관됐다. 면담 초기에는 다른 계열사에 자리를 알아보겠지만 쉽지 않을 수 있으니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그 뒤론 아예 시한을 못 박는다. 1월 말까지 시간을 줄테니 구직 활동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아예 회사를 나오지 말라는 말도 한다. 직원들이 주저하자 인생을 멀리 보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인생 100년으로 봤을 때 점 하나 밖에 안 된다. 이게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너무 마음에 담고 있으면 앞으로 못 나간다. 지금 있는 문을 닫아야 다음 문을 연다.' 1월 말에는 시간을 한 달 더 주겠다며 '시장조사팀 발령 후 이렇게 오랬동안 기다린 적이 없다'고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식의 퇴사 종용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인사팀장은 작년에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 인원을 선정해 면담을 통해 퇴사를 시켜왔다고 말했다. 

녹취를 들으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던 '희망퇴직'이란 단어가 손에 잡힐 것처럼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희망퇴직이란 모순적인 단어 조합 속에 가려진 냉엄한 해고의 실체가 말이다. 회사 측의 태도도 놀라웠다. 부당해고, 그러니까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서 그 태도가 너무 당당했던 것이다. 특히 구직 전까지 한 두 달의 시간을 주겠다며 시혜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가장 그랬다. 인사팀이 노동법에 대해 무지해서 그랬을 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SPC그룹에서만 유독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정년을 마치기 전에 회사를 스스로 나와야 하는 많은 이 시대 직장인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또 한 번 느낀 것은, 우리 기업들이 저성과자 해고의 도입을 요구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팀에 발령난 한 직원은 지난해 10월에 육아휴직에서 복직했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넘어 11월 말에 저성과자로 분류됐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저성과자 지정과 그에 따른 인사 조치는 최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 이제 막 육아휴직에 복직한 직원은 전년도 평가 실적 자체가 없는데도 이런 일을 당했다. 또 다른 직원은 지난해 상반기 업적평가와 역량평가에서 모두 B등급을 받았다. A~D등급 중 중간이다. 업적평가는 양적 평가이고 역량평가는 상관인 팀장의 주관적 평가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해당 직원이 평가 등급은 보통이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해당 업무에는 부적격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 지침과 판례에 따르면 객관적 평가 근거 없이 단순히 '종합적으로 볼 때 부적격'이라며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은 인사권 남용에 해당된다. 대기업에서도 평가 시스템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중소, 중견기업은 이보다 나을 리 없어 보인다.
(취재가 시작되자 SPC그룹은 해당 직원들을 기존 업무로 돌려보냈다. 해고 종용은 없었다는 입장도 다시 한 번 밝혔다. 직원들로서는 해고 종용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지만 면담의 실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취재일기]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 노조를 만들었지만... 세상읽기

옳은 것이 패배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안 되는 것일까. 결국은 가진 자가, 힘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일까. 책 속의 진리는 다 헛되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리얼한 진리일까. 옳은 일을 했던 사람들은 결국 어리석었던 것일까. 이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옆에서 응원하며 박수를 쳤던 나는 뭔가 망연자실해진다. 

지난해 10월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들을 취재해 집중 보도한 적이 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이면서도 근로자 대우를 받지 못했다. 기본급에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도 없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리점 대표에게 저항해 싸웠다. 뭔가 바뀔 지 알았다. 그로부터 석달 뒤, 이들은 직장을 잃어버렸다. 대리점이 문을 닫아버렸다. 폐업했다. 이건 노조의 승리인가, 아니면 패배인가. 

노조를 만들면 바뀔 지 알았던 기대는 원망으로 바꼈다. 노조를 만들자고 앞장섰던 위원장에 대한 원망으로. 위원장은 그 책임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전화를 한다. 답답함이 묻어난다. 이 사태를 반전시키기 위해 뭐라도 이슈화해야 겠다는 그의 심정이 나는 백분 이해간다. 돕고 싶다. 그의 주장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기자의 시각에서 볼 때는 기사를 쓰긴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이 없다. 그의 말을 듣는 나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어떤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부추겨서 그가 노조를 결성한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순수하게 그의 의지와 노력 덕분이었다. 나는 대리점 영업사원의 노동 실태를 취재하면서 그에게 사적으로 조언도 해주고 응원도 했다. 보도가 나간 직후만 해도 그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노조가 생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조합원도 는 거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조를 인정하고 교섭할 거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었다. 

그렇다. 결국 진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리점이 문을 닫았으니 대리점 대표로서도 손해는 손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진 않는다. 수년 동안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벌어놓은 게 있다. 적어도 영업사원들보다는 몇 배나 많이. 문을 닫는다고 생계에 지장은 없을 게다. 영업사원들은 다르다. 대부분 아이들이 어린데다,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가진 자가 이긴다. 더 오래 버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폐쇄해도 굶어죽지 않기 때문이다. 1+1=2인 것처럼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다. 노동자에게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있다지만 그것도 다 생존권이 보장될 때나 유효하다. 직장이 없어졌는데 어쩌겠는가.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노동조합. 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 해법은 노조 조직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본다. 결국 당사자가 싸워서 파이를 더 많이 쟁취해내야 한다. 국가 권력이 민간에 개입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거나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할 뿐이다. 직접 더 많은 파이를 뺏어오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그것도 가족의 생계를 걸어야 하는 위험한 모험이다. 이번 사안을 취재하면서 그 전 과정을 너무 생생하게 목격했다. 

[취재일기] 시청 직원 잇따른 자살, 그 뒤에 과로에 불안장애 세상읽기

시청 직원의 자살 사건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한 건 사건이 벌어지고 일주일 넘게 지나서다. 시청 직원 2명이 크리스마스 전 날인 12월 24일과 나흘 뒤인 28일에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직원 모두 서소문청사에서 몸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투신 장소도 같았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나는 1월 1일자 신년 뉴스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좋아서 하는 리포트는 아니었다. 그저 회사의 새해 표어가 '청년 대한민국'인 만큼 청년 창업자들이 고군분투 하는 현장을 취재하라고 해서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간만 있다면 두 직원의 빈소에라도 찾아가 유족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두 사람의 죽음은 완전히 잊혀진 듯했다. 기사도 나오지 않고 기자실에서도 누구하나 이 사건을 거론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유서가 없던 탓이 컸다. 죽음의 사회적 맥락을 짚을 수 있는 단서가 말이다. 나는 그제서야 취재에 나섰다. 1월 4일이었다. 유족의 연락처는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 시청에선 연락처를 줄리 만무했다. 이미 장례가 다 끝난 뒤라 빈소를 찾아갈 수도 없었다. 숨진 6급 공무원 최 모 씨의 딸이 온라인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에 남겼다고 알려진 몇 개의 글만이 단서였다. 
 
좀더 빨리 취재할 걸, 하는 안타까움으로 글을 죽 보다가 메일 주소 하나를 발견했다. 최 씨가 숨지고 나흘 뒤에 숨진 7급 공무원 이 모 씨의 동생이 남긴 댓글이었다. 최 씨의 딸에게 같은 유족으로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남긴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 문제를 취재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기대는 안 했지만 며칠 뒤 이 씨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묵직한 음성에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났다. 오전 10시쯤이었다. 시청에서 나오는 각종 보도자료를 단신으로 처리하느라 한창 바쁠 때였다. 하지만 나는 바로 자리에서 튀어나갔다. 중요한 전화를 할 때는 기자실에서 할 수 없다. 계단으로 가는 중간 통로가 나의 단골 장소다. 
 
동생은 중요한 사실을 많이 얘기했다. 형이 숨지기 한 달여 전부터 8차례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진료기록을 곧 끊을 예정이라고 했다. 또 형이 처음부터 재무과의 급여 업무를 담당했던 게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1월 입사 뒤 형이 처음으로 배치 받은 곳은 재무과의 계약 업무 담당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급여 업무를 담당하던 동기가 일이 너무 힘들다며, 인사고충을 낸 뒤 받아들여지지 않자 몇 차례 결근을 했다고 했다. 결국 지난 5월 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숨진 이 씨뿐 아니라 전임자도 급여 업무를 힘들어했다는 방증이었다. 동생은 형이 과로에 시달렸다며 초과근무기록도 시에 요청해놨다고 했다. 
 
유족을 취재할 때는 고민이 많다. 보통 때는 열심히 파헤쳐 뭔가 나오면 보도하면 그만이다. 즉 보도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선주로를 내달리면 된다. 하지만 유족 취재는 다르다. 보도로 인해 유족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유족이 향후 보상 또는 배상을 받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어떤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 알린다고 한들, 산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면 과연 보도를 하는 게 맞는 걸까? 더 큰 공익을 위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나는 그건 아닌 거 같다.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누군가의 죽음을 단순히 특종 거리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비인간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동생과 통화한 뒤 두 직원이 왜 죽음이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의문을 풀어줄 작은 단서가 보이는 듯했다. 두 사람은 죽는 순간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기자인 나도 그 죽음에 의문이 들고 답답한 마음인데, 유족들은 어떠할까. 

유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도 그렇다. 단원고 2학년 5반이었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지나는 꿈을 꿨는데, 딱 눈을 뜨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창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 엄마가 하는 일이 맞아요. 엄마가 진상규명을 위해서 그렇게 애쓰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엄마 더 열심히 해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확신이 들었어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157p) 그렇다. 소중한 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을 때, 유족이 그 한을 풀어주는 방법은 진상규명뿐이다.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유족은 스스로 죄책감을 갖게 된다. 

나는 숨진 이 모 씨의 유족과 통화한 뒤 강한 확신이 들었다. 사람이 그냥 죽었을리 없다. 두 사람 모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멀쩡했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형이었다. 지병이 있거나 우울증을 앓았던 이력도 없다. 분명히 이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또 다른 직원인 최 모 씨의 유족과도 연락을 시도하려 애썼다. 수소문 끝에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에서 유족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부장에게 연락처를 부탁했지만 유족 측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언론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렇게 하루이틀 취재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초조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즈음 1월 7일 낮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최 씨의 부인이었다. 경찰 수사로는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 별로 나올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사실 형사처벌을 하는 경찰 입장에선 이 사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남대문경찰서는 숨진 최 씨가 상관에게 지속적으로 상납을 강요 받았는지 등 혹시 죽음 뒤에 있을지 모를 구조적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타살 혐의가 없는 이상 그 외에 경찰이 수사할 수 있는 건 없다. 과로나 윗 사람의 폭언 등은 시청 내 조직 문화의 문제다.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나는 너무 반가웠다. '반가웠다'는 표현이 유족에게 적절치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죽음이 완전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전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컸다. 유족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남편의 죽음을 잊지 않고 취재하는 기자가 있다는 게 반가운 듯했다. 나는 또 다른 유족인 이 씨 동생의 연락처를 전해줬다. 유족들이 함께 상의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찌 보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여태 양 쪽은 서로의 연락처를 몰랐다. 

1월 8일 나는 최 씨의 부인을 시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카페로 걸어가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족에게 보통의 취재원을 대하듯이 사무적일 순 없다. 보도를 하는 게 맞고 그러니까 관련 자료를 주시라고 강하게 설득할 수도 없다. 일단 내가 왜 이 문제를 취재하는지, 진정성을 담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보도 여부는 유족에게 판단을 넘겨야 한다. 유족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보도를 했다가는 분명히 뒤탈이 난다.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문제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꼭 이건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래서 괴롭다. 

유족도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운 듯했다. 자칫 보도에 협조를 했다가 서울시로부터 화를 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 될 수 있다. 또 보도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인가. 유족들이 흔히 고민하는 부분들이다. 나는 설득하지 않으려 했다. 그 설득을 책임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보도가 유족들에게 진정 도움이 될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유족들에게 나쁠 것은 전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언정 걸림돌이 되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 앞에선 이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결국 유족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시청 기자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건 더더욱 나의 역할이 아니다. 그 죽음에 대해선 나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유족과 나눈 대화 가운데 단 한 줄도 기사로 쓸 수 없다면 내가 왜 유족을 만났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와의 만남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취재를 허락한 것이 아닌가. 왜 나의 취재 권리를 취재원에게 스스로 양도했을까. 보도 여부에 대해 굳이 유족의 '허락'을 요청한 게 과연 적절했는가 혼란스러웠다.  

이에 대해 아는 동료 기자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기자는 '보도를 허락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들은 모든 것을 기사로 쓸 수 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대화를 나눈 이상 말이다. 거기에 대해선 기자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은 사람의 책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료 기자는 누구를 만나든 '이거 보도해도 될까요?' 라고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예 처음부터 '이거 취재하러 왔다'고 밝힌 이상, 더 이상의 허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 주 주말, 나는 이 모 씨의 동생으로부터 초과근무기록과 진료기록을 받았다. 숨진 7급 공무원 이 씨는 11월 16일부터 숨지기 전까지 8차례 병원을 다녔다. 그 중 처음 4차례에 걸쳐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또 '과로로 탈진', '온 몸에 기운이 없다'는 등의 증상도 기록돼 있었다. 이 씨는 어머니에게도 기도 형식의 카카오톡을 보내 일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링크를 아래 첨부한다) 

나는 무리하게 과로와 그의 죽음을 연결하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그의 죽음은 과로가 결정적이었다고 단정할 순 없어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감기나 특별한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과로로 인한 탈진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건 드물다. 이 씨가 의사에게 자기 증상을 거짓말을 할 리도 없다. 이 씨가 극단적인 피로와 무기력에 빠져 있던 것은 엄연한 사실로 보인다. 나는 진실이 뻔히 눈 앞에 있는데 당장 보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괴로웠다. 유족의 동의를 기다려야 했다. 유족이 거절하면 일주일 간의 취재는 헛수고가 된다. 적어도 세상에 진실을 알린다는 차원에서는. 

주말이 지나고 1월 12일 월요일, 양 유족 측에서 모두 연락이 왔다. 보도를 원한다고 했다. 이면에는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 결렬이 컸다. 유족 측은 시청이 책임있게 이 문제를 조사한다는 확인을 받고자 시장 면담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하루종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관에 있어야 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 여부를 결정하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던 탓이다. 노동부도 2진으로 출입하기에 내가 현장을 취재해야 했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다음 날, 보도를 했다. 아쉽게도 9시 뉴스에는 나가지 못했다. 편집부에서 아이템을 채택하지 않았다.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유족 측에게도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로 문제는 너무 심각하지만 그 심각성을 잘 모른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기사를 보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 초과근무는 나도 하는데.' 우린 과로에 너무 익숙하다. 어제 한 경제매체의 증권부 기자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한다. 모 매체에서 일하다 과로로 몸이 너무 나빠져 1년을 요양한 뒤 매체를 옮겨 입사했다고 한다. 그녀가 숨진 날은 일요일이다. 그녀의 기사를 검색하면 전 날인 토요일에도 기사가 수십 개가 뜬다. 쓰러지기 전날까지도, 그것도 주말까지도 그녀는 수십 건의 기사를 써야 했다. 

앞으로 두 직원의 죽음이 업무 연관성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인정 받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쉽지 않을 것이다. 전례를 봐도 그렇다. 과연 두 직원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이 없는 것일까. 남겨진 유족은 얼마나 한스럽겠는가. 

<작성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27316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6&aid=0010272837

<울분>비극이든 희극이든 인생은 운명을 살아내는 것 책과 영화

내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은 '조심 또 조심'이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혹시 숨어있을 지 모를 함정과 덫을 피하기 위해 내 걸음걸이는 엉거주춤하고 느릿느릿했다.

연애에서도, 그러니까 신중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영역에서마저 나는 내 방식을 고수했던 거 같다. 얼굴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다. 누구나 상처라는 게 있는 법이지만 조금 더 도드라진 상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때론 그 상처를 보듬는 행위가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짧은 얼마 동안이었지만. 나는 얼마 안 가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내가 떠안으려 했던 그 상처가 영원한 내 인생의 덫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그 덫을 기꺼이 후회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불행하진 않을까? 나는 "습관처럼 비이성적인 것 앞에서 이성적이 되려 했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함을 보려 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성에 의존하곤 했다."<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필립로스>

소설 <울분>의 주인공 메스너는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버드런트 러셀'의 제자를 자처하지만 사랑에선 그렇지 못했다. 그는 과거 한 차례 목숨을 끊으려 했던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눈망울에 온통 눈물뿐인 여자 올리비아를. 올리비아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 그 자해의 흔적은 닥쳐올 불행을 선명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스너는 "그런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랑하게 되었다." 메스너는 올리비아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너하고 가까이 있는 것 말고는 원하는 게 없기 때문이야. 네 얼굴을 사랑해. 네 아름다운 몸 때문에 미칠 거 같아."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사랑이란 감정은 모든 다른 가치에 우선하는 것일까? 올리비아를 사랑하게 된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한테 자기가 원하는 거, 하지만 너는 줄 수 없는 걸 간청하고 또 간청할 때 외면할 수 있겠어? ...  너한테는 양심도 있기 때문이야. 물론 너한테 양심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만, 양심은 네 적이 될 수도 있어. ... 다른 사람의 약한 곳은 강한 곳과 똑같이 너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한 사람들이라고 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약점이 바로 그 사람들의 힘이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은 너한테 위험해. 마키. 덫이야."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버릴 거야. ... 감정은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 너도 네 감정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해라."


메스너는 어머니에게 올리비아와 헤어지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마음을 바꾼다. 올리비아에 대한 열망은 더 뜨거워진다. 망설임 없이, 마치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어찌보면 무척 평범하고 우연적인 그의 선택은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메스너는 몇 단계의 사건을 거쳐 퇴학을 당했고 그 바람에 전쟁에 끌려갔으며 눈을 떠보니 다리 한 쪽이 절단돼 있었다. 메스너는 그렇게 죽었다.

그렇다고 메스너가 그 짧은 인생에서 해왔던 선택들을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이란 행위는 없었다고. 우리는 그저 그것이 비극으로 끝나든, 희극으로 끝나든 타고난 운명을 살아낸 것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매 순간 얼마나 지혜롭게 판단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마치 인생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마냥, 인생은 우리 의지에 따라 이렇게 갈 수도, 저렇게 갈 수도 있는 것마냥. 실상은 다르다. 우리의 인생을 저 위에서, 이를 테면 신의 영역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사실 저마다에게 운명지어진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다.
 

감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양심에 민감한 사람은 항상 양심에 얽매여 사소한 부정에도 눈 감지 못하고, 출세욕이 강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출세를 쫓는다. 싸울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되레 싸우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싸워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메스너는 분명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다. 좋은 인생을 꾸려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이성과 논리로 무장하고 인생을 철저히 자신의 계획 속에서 진행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국면에선 결국 메스너답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좇까, 씨발"로 상징되는 울분을 터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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