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권리 운동과 언론

23일 시청 역에 있는 국가인권위를 찾았다. 11층에는 '탈시설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 탈시설권리란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뭔가 싶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실상 탈시설권리 운동은 장애인 운동 진영에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해 온 것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이동권 투쟁은 탈시설권리 운동으로 옮겨왔다. 실제로 '에이블뉴스'라는 장애인 신문은 2008년부터 관련 기사를 꾸준히 실어 왔다.

탈시설권리를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절실히 깨닫는 건 장애 관련 이슈가 메이저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정말 드물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룬 기사는 에이블 뉴스를 빼고 '프레시안'이 거의 유일하다. 농성을 하고 있다는 짧은 보도 기사는 있었지만, 탈시설권리를 사회적 담론의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기사는 없었다고 봐야겠다. 2년 가까이 장애인 복지정책의 새로운 방향으로 '탈시설'을 외쳐왔지만 이게 공론장으로 수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메이저 언론이 이를 몰랐을 리 없고, 알고도 외면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회면 지면의 한 귀퉁이도 할애할 수 없을 만큼 가치있는 뉴스들이 많았던 것일까. 

현직 기자들이, 또 데스크가 판단하는 뉴스 가치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전국의 장애인 숫자를 모두 한다면 강남구 주민보다 그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숫자로 따지면 절대 소수자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은 이를 외면한다. 장애 관련 이슈는 장애인 신문에서만 찾을 수 있다. 

역시 뉴스도 언론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시장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재화를 공급하지 않는다. 시장은 돈 없는 거지에게 빵 한 조각 기부하지 않지만, 돈 있는 이에게는 돈만 낸다면 10억짜리 시계도 만들어 준다. 마찬가지다. 힘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지면의 한 귀퉁이도 할애하지 않는 언론이지만, 자기 입 맛에 맞다면 김동길 같은 인간에게도 두 쪽 전면을 할애하는 게 언론인 것이다.    

* 탈시설권리란 "장애인이 시설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등하게 자립생활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권리를 말함. 장애인을 보호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 사회적 격기 및 배제의 형태인 시설에서 장애인이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설보호주의를 넘어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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