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개가 넘는 CCTV가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시대다. 스마트폰 사용자만 해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스마트폰은 일반 카메라에 버금가는 렌즈와 음향 기술을 장착한 데다 무선인터넷을 통한 전파성까지 띠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내 행동거지가 누군가의 카메라에 노출돼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디지털 감시사회'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감시의 일상화로 이제는 혼자 있을 때도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해졌다. 욕도 주위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이러한 '감시의 일상화'는 미셸 푸코가 말했던 '판옵티콘'의 원리가 현실에서 실현된 것이다. 본래 판옵티콘은 영국의 제러미 벤담이 18세기에 제안했던 감옥 설계의 원리다. 이 원리에서 감독자는 중앙감시탑에서 수용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죄수들은 감시탑의 상황을 알 수 없다. 누가 감시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항상 감시 받고 있는 상태가 판옵티콘인 것이다. 우리를 감시하는 건 감독자의 눈이 아니라 감시 받고 있다는 데서 비롯하는 우리 자신의 공포와 불안이다.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자기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푸코가 판옵티콘에 주목한 것도 판옵티콘이 근대 권력의 핵심적인 작동원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판옵티콘의 원리에 충실한 것 같다. 무엇보다 '패킷 감청'의 문제는 심각하다. 국가정보원은 '패킷 감청' 장비를 3배나 늘렸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상에서 오고 가는 데이터 조각인 패킷(Packet)을 제 3자가 중간에서 가로채 재구성하는 것이다. 어느 사이트를 방문했는지, 뭘 검색했는지, 채팅 내용은 뭔지 모조리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동일회선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도 노출된다. 감시의 전면화다. 이제는 함부로 정부를 욕했다가는 어디에 기록이 남아 뒤통수를 맞을지 모를 일인 것이다. 최근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유표한 사람을 고소한 일도 있었다. '재미삼아' 하는 일에 '죽자고' 덤벼드는 게 이 정부다. 이런 정부에 마지막으로 욕 한 마디 하고 싶어진다. "너자 잘해, 이 빵구똥구야!" (140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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