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공정한 사회와 롤스의 차등원칙에 대하여 세상읽기

요즘 서울대가 '지역할당제' 도입을 앞두고 시끄럽다. 지역할당제는 오래된 논란거리다. 할당제 도입에 찬성하는 학생들은 애초에 산간오지의 학생들과 도시 지역 학생들 사이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통합은 대학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다. 반면, 반대쪽은 할당제가 자격 있는 학생들에게 '역차별'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동등한 대학 입학의 기회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지역할당제 논란은 이른바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쟁의 핵심을 보여준다. 논쟁의 중심축은 '개인의 권리'가 우선인가, 아니면 '실질적 기회균등'이 우선인가에 있다. 권리를 앞세우는 쪽은 자유 시장을 통해 이미 기회균등이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 사회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법 앞에서의 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에게 경기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면 그 경기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사실 개인의 성공은 상당 부분 어디서 태어났느냐, 또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하는 '우연적 요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연에 근거한 분배를 공정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상속세 인상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속이야말로 출발선의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는 목이 터져라 '자유 수호'를 부르짖으면서도, 상속세 인상에 대해선 펄쩍 뛰고 반대한다. 결국 이들에게 자유는 얄팍한 '소유의 자유'일 뿐이다. 반면,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인 롤스는 '정의론'에서 차등원칙을 내세운다. 즉, 재능 있는 사람을 최대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돕되, 그 결실은 사회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의 혜택을 독점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우연의 힘은 최대한 억제하고, 개인의 노력에는 최대한 보상하는 게 정의이고, 자유로운 사회다.    

공정한 사회는 '형식적인 기회균등'에만 기대지 않고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해소하는 다른 조치들을 취하는 사회다. 조치의 핵심을 이루는 건 '교육의 기회균등'과 '사회안전망'이다. 부모의 재산에 관계없이 누구나 재능을 개발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한 번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결국 공정한 사회 논쟁의 종착점은 '조세문제'로 향하는 것이다. 조세정책으로 뒷받침 되지 않는 '친서민', '공정한 사회'는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롤스의 차등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선 누진율이 높은 소득세나 재산세, 상속세 중심의 증세가 필요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소득자의 실효세율은 11.8%로, OECD평균인 25.6%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전 정부와의 차별화라는 도그마에 걸려,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득세·법인세 인하를 시행해왔다. 조세 정책이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 보수당 정권은 부유층 세금을 20% 올리는 내용의 예산안을 발표했다. 캐머런 정부가 내세운 국정 아젠다 역시 '공정'(fairness)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두고 '가장 혁명적이 않을 것 같았던 총리의 가장 과격한 개혁'이라고 평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분배의 공정함에 사회적 의문이 제기되면서, 우파 정부들도 롤스의 차등원칙에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평한 기회'와 '한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얘기했다. 문제는 실질적 기회균등이다.


덧글

  • 뿌취문 2010/09/14 03:01 # 답글

    지역할당제 반대자는 싸구려 자유주의자일 뿐입니다.
    저같은 진짜 자유주의자는 대학이 할당제를 하건 말건 대학의 자유니 냅두자 주장하죠.

    상속세는 물론 반대입니다.
  • nevis 2010/09/14 15:19 # 답글

    뿌취문/ 대학이 지역할당제를 도입한 건 '그냥 냅두니까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닙니다. 기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상속세를 반대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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