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의 악당] 총체적 신경증에 걸려버린 세상 책과 영화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을 보고 나서의 느낌은 그의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을 보고 난 뒤의 느낌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 정도를 기대하고 봤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기대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여자주인공이 사람을 다섯이나 죽인 살인마라는 설정에서부터 그렇다. 그러나 이야기가 잔혹 드라마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최강희 같은 얼굴이면 살인마와의 연애라도 한번쯤 살벌하게 해보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게다. <이층의 악당>은 장르 구분이 '코미디'로 돼 있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 우끼는 장면이나 대사는 많다. 그러나 그 웃음이 발생하는 '상황'은 사실 그다지 웃길 만한 상황이 아니다. 상황 자체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아주 긴박하고 스릴감 넘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미디나 서스펜스라는 장르 구분은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층의 악당>이 묘사하는 세계를 보면, 우리 모두는 어딘가 뼛속 깊이 병들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안에 시달리며 이상 행동을 반복한다. 집 주인인 연주(김혜수)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술과 약을 반복하고, 그녀의 딸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 안경을 쓰고 벗기를 반복한다. 재벌2세는 아버지 몰래 빼돌린 비자금이 탈로 날까봐 고함을 반복하며, 그의 비서는 재벌2세가 자기보다 송 실장을 아끼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입을 삐죽거리기를 반복한다. 이들의 강박증과 히스테리가 더 비극적인 것은, 이들이 하는 고민들이 하나 같이 속물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위대한 것을 두고 하는 번뇌는 비극적이기보다 장엄할 텐데 말이다.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정신병 환자인 이들 인물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라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감독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웃음 아닌 웃음이 터져나온다. 개운한 웃음이 아닌 것이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왔네"(늙은 여자), "그냥 소설가예요"(연주),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소설가 남자가 들어왔네"(늙은여자) 와 같은 대사가 그렇다. 상황을 더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전문가라고 하는, 공인된 자들의 조언 같지 않은 조언들이다. 연주는 정신과 의사에거 자신의 고통을 전하려 하지만, 정신과 의사는 "눈에서 면도날이 팍팍팍" 나올 것만 같은 눈빛을 보낼 뿐이다. 창인(한석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불면증을 "몸이 안 바쁜 요즘 여자들" 탓으로 돌린다. 그러자 연주는 이렇게 일갈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나이 쳐먹으면 아무한테나 조언하고 충고해도 되는 자격증이라도 국가에서 발급하나봐!" 

그렇다면 우리의 불안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사람들이 찾는 것은 CCTV와 각종 보안시스템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CCTV를 필요 이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연주의 집, 그녀의 딸이 다니는 학교, 재벌2세의 빌딩 등 극중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든 장소에 CCTV가 사용된다. 그러나 CCTV는 되레 감시의 기능을 할 뿐이다. 특히 연주의 딸은 특유의 짙은 다크써클을 뿜어내며 감시 받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잘 표현한다.

집 안에 숨겨진 보물 도자기를 훔치러 한 악당이 세입자로 들어온다는 설정은, 장르적으로 스릴러를 연상케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스릴러의 긴박감을 중간중간 지우려 애쓴다. 쫓고 쫓는데 이목이 집중되면, 그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과 소외의 일상'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적과의 동침이란 설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보는 이를 즐겁게 하지만, 내 시선을 진짜로 잡아 끄는 것은 그 여백이었다.  

#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왜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한석규 김혜수는 둘 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데 말이다. 한석규는 한참 흥행작이 안 오는 듯.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단 한 가지가 있었다면 김혜수의 훌륭한 몸매..


덧글

  • 푸른미르 2011/01/28 16:08 # 답글

    피곤한 세상에 사람들이 굳이 피곤한 영화를 보려고 하겠습니끼?
    차라리 현실도피 하더라도 편안하고 명랑해지고 싶어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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