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블랙스완] 자기삶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 이겨내야 할 것들 책과 영화

영화 두 편을 봤다. <가타카>와 <블랙 스완>. 가타카는 SF영화이고 블랙스완은 발레를 소재로 한 스릴러라는 점에서 별다른 공통점이 없을 거 같다. 그러나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꿈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다. 가타카의 빈센트(에단 호크)에게는 '우주선을 타는 꿈'이 있고, 블랙스완의 니나(나탈리 포트먼)에게는 백조의 호수의 '프리마 돈나'가 되는 꿈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주어진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자신이 버리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버릴 수 없는, 버리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 하는 그런 한계 말이다. 빈센트와 니나는 운명의 여신과 한 판 줄다리기를 벌인다. 줄다리기의 승자는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같은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빈센트와 니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면서 사라져 간다.

사회라는 것은 곧 '선별과 배제의 시스템'으로 이뤄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격'이 있는 자는 뽑히고 없는 자는 배제된다. 그 자격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이른바 '스펙'이란 것일 테다. 빈센트가 살아가는 미래사회의 스펙은 '유전자'다. 미래는 '유전자 차별'의 시대다. 때문에 미래에는 지원자의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는 일도 없어진다. 그저 혈액 한 방울이면 한 사람의 기대 수명과 잠재 능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 못한 탓에 열등한 유전자로 태어났다. 그는 눈도 나쁘고 체력도 달린다. 평생 청소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영화는 묻는다. 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열려있고, 또 닫혀있는가. 우리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래 한 알만큼의 변화도 안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유전자이든, 부모의 재산이든, 타고난 외모와 성격이든, 우리 삶을 이미 결정짓는 요인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문제는, 해당 사회의 선별시스템이 '이미 결정된 것들'에 얼마나 큰 가중치를 두고 있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미 결정된 것들 중에 하나인 '성격'을 '감정능력'이란 항목으로 평가하는 요즘 세태는 가타카 못지 않게 폭력적이다. 
일례로 '인적성검사'가 그러하다. 인적성 검사를 통해 이 사람이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 사회에 얼마나 적대적인지, 신경성 수치는 얼마나 높은지 모든 게 수치화된다. 인성이라고 하는 인간의 가장 복합적이고 미묘한 부분마저도 수치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타카에서 면접은 혈액 한 방울로 끝난다. 카타카는 현재의 극단화된 미래일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다양하게 개발되면 될수록 그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점수화된 지표들이 있는 마당에 내 앞에 앉아있는 지원자와 긴 시간을 뺏겨가며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가타카에서 부조리가 사회적 차원에서 전개됐다면 블랙스완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전개된다.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백조와 흑조는 한 사람이 연기한다. 한 사람이 순수의 극단과 사악함의 극단을 동시에 표현한다는 얘기다. 니나는 감독으로부터 "너 같으면 이런 통나무하고 섹스하고 싶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욕망을 깨우는 비릿한 살내음이라고는 전혀 맡을 수 없는, 정말이지 '시체' 같은 존재다. 그러한 그녀가 어떻게 상대방을 유혹해 파탄에 빠뜨리는 흑조가 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니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  중증 환자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 자위를 하다가 자기 방에 어머니가 있었음을 깨닫는 장면은 그러한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꽤나 충격적인 씬 중에 하나였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과 관련해 '꿈'(dream)이 시사하는 바는 무척 크다. 정신분석학에서 꿈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단초 역할을 한다. 즉, 무의식의 일말을 보여준다. 니나는 흑조와 키스하는 꿈을 꾸고, 감독과 사랑을 나눈다. 게다가 동성애도 나온다. 섹슈얼리티야말로 그녀가 욕망하는 것이고 그녀가 시체에서 사람으로 복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인이다.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모두 환영과 환청 속에서 현현된다. 환영은 더 이상 환영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진짜 모습이고 또 그녀가 바라는 모습이다. 

빈센트와 니나가 운명의 여신을 어떻게 때려 눕힐 수 있었는지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빈센트는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동생과의 수영 대결을 펼친다. 동생은 앞서가는 형에게 묻는다. "빈센트,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우린 돌아가야 해. 우리 둘 다 빠져 죽길 바래?" 그러자 빈센트는 말한다.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이게 바로 내가 해온 방식이야. 나는 절대 돌아갈 힘을 남겨두고 수영하지 않아." 블랙스완의 대사는 이렇다. "Loos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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