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갈매기] 뭔가 되려고 했던 우리네 삶에 대한 위로 책과 영화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갈매기>를 봤다. 중앙일보 정진홍 칼럼에서 종종 명동예술극장이 등장했었는데 실제로 가보긴 처음이었다. 연극이 시작하면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무대 오른편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객석이 어두운 가운데 연주자들의 악기와 얼굴에만 은은한 조명이 비춰졌다. 새로 단장한 때문인지 의자도 편안하고 깨끗했다.

연극을 보면서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전율하게 된 장면이 있었다. 장장 2시간 반에 이르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다. 불행한 문학청년 트레프레프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 뒤 영혼이 되어 이렇게 외쳤다. "모든 생명은 그 슬픈 순환을 마치고, 사라졌다." 절에서 커다란 종을 쳤을 때 울려퍼지는 진동 같은 게 가슴팍으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는 운명의 신에게 간택되어야만 허락되는 재능이란 게 있다. 트레프레프는 위대한 희곡을, 또 소설을 쓰고자 했지만 신은 그에게 그런 작품을 쓸 만한 재능을 허락하지 않았다. 트레프레프는 치열하게 인정투쟁을 벌였지만 운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운명은 가혹했다.

순수한 사람들은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사랑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려 하고, 열정도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바치려 한다. 그러한 순수함을 버리면 사실 세상사는 쉬워 진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면 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순수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 한다. 트레프레프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순수했다. 순수함은 파멸로 이어졌다.
 
극중에서 인상 깊었던 다른 인물 중에 하나는 트레프레프의 외삼촌이다.(극중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그도 명대사 하나를 남겼다.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게. 뭔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이미 노인이 된 그는 한 평생 뭔가 되려 했다. 젊은 시절엔 작가가 되려 했고, 나이 들어선 결혼을 하려 했으며, 늘그막에는 도시에 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법무관, 노총각으로 살았고 이제는 시골에서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하루에 몇 번씩 기절(?)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나는 더 살고 싶어." 어쩌면 인생이란 온통 '차선'으로 가득찬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차선만 돼도 다행인가.

어디선가 "운명을 사랑하라" 라는 경구를 본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내 운명과 대결이라면 대결을 벌인 셈인데 그러고 나니 저 경구가 그만 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물론,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은 아닐 게다. 그것은 다만 세상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비합리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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