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벨이 울렸다. 참으로 끈질긴 선배다.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나는 핸드폰을 들고 안절부절이다.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 일단 전화를 받고 아파서 집회에 못 간다고 하자.' "어이, 아직도 출발 안 했어? 언제와?" "선배, 저..."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집회에 가기 싫다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 있는데도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 한다. 내 대학 때 얘기다.
파업이 4주차가 되자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 '집회에도 나오는 사람만 나온다.' 우리 동기들의 집회 참여율도 파업 초기보다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100%에 가까운 참여율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군가는 자진해서 '군기반장'이 되곤 한다. 직접 전화를 하거나, 카톡질로 은근히 책망함으로써 집회 참여를 채근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볼멘소리도 나온다.
혹자는 말한다. 집회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백번 생각해봐도 지당한 말씀이다. '원론적으로.' 앞에서 언급했던 한 98학번 선배는 꽤나 집요했었다. 그는 너도 이제 선배인데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내 자존심을 건드리곤 했다. 자꾸 의무감만 부여하는 선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식으로까지 해서 집회를 나가야 하나, 의문도 들었다.
재밌는 것은, 그토록 집요하게 내 삶에 간섭해 들곤 하던 그 선배가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고맙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겠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고민하게끔 이끌어줬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세계에도 지구상의 중력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며, 그것은 곧 '이기심'일 게다. 인간은 저절로 굴러가게끔 놔두면 다 그쪽으로 향하게 돼 있다. 인간의 뇌구조를 해부해 본다면 절반 이상은 '나'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자들은 말한다. 자기 일과 관련한 최고의 판단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익과 관련된 행동에 국한된 것이다. 무엇이 더 가치있는 행동인가를 판단하고 또 결단하는 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기심이 언제나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행위'는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에는 더구나.
집회를 나오고 안 나오고는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각자가 '알아서 할 일'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는 함께 파업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는 관계라면 응당 전화를 하든 문자를 하든 '간섭질'을 하는 것이 맞다.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과 부담감을 익히 알지만서도 말이다.
- 2012/03/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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