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5주차, 집회에 나오냐 안 나오냐는 자유지만.. 살며 생각하며

전화 벨이 울렸다. 참으로 끈질긴 선배다.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나는 핸드폰을 들고 안절부절이다.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 일단 전화를 받고 아파서 집회에 못 간다고 하자.' "어이, 아직도 출발 안 했어? 언제와?" "선배, 저..."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집회에 가기 싫다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 있는데도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 한다. 내 대학 때 얘기다. 

파업이 4주차가 되자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 '집회에도 나오는 사람만 나온다.' 우리 동기들의 집회 참여율도 파업 초기보다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100%에 가까운 참여율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군가는 자진해서 '군기반장'이 되곤 한다. 직접 전화를 하거나, 카톡질로 은근히 책망함으로써 집회 참여를 채근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볼멘소리도 나온다.

혹자는 말한다. 집회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백번 생각해봐도 지당한 말씀이다. '원론적으로.' 앞에서 언급했던 한 98학번 선배는 꽤나 집요했었다. 그는 너도 이제 선배인데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내 자존심을 건드리곤 했다. 자꾸 의무감만 부여하는 선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식으로까지 해서 집회를 나가야 하나, 의문도 들었다.

재밌는 것은, 그토록 집요하게 내 삶에 간섭해 들곤 하던 그 선배가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고맙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겠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고민하게끔 이끌어줬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세계에도 지구상의 중력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며, 그것은 곧 '이기심'일 게다. 인간은 저절로 굴러가게끔 놔두면 다 그쪽으로 향하게 돼 있다. 인간의 뇌구조를 해부해 본다면 절반 이상은 '나'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자들은 말한다. 자기 일과 관련한 최고의 판단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익과 관련된 행동에 국한된 것이다. 무엇이 더 가치있는 행동인가를 판단하고 또 결단하는 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기심이 언제나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행위'는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에는 더구나.

집회를 나오고 안 나오고는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각자가 '알아서 할 일'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는 함께 파업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는 관계라면 응당 전화를 하든 문자를 하든 '간섭질'을 하는 것이 맞다.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과 부담감을 익히 알지만서도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