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몰락> 그러나 여전히 정치는 힘이 세다 책과 영화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와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의 대담집 <정치의 몰락>을 읽었다. 대담집이라고는 하지만, 강 기자는 주로 질문을 던지고 박성민 컨설턴트가 답하는 식이다. 즉, 한국사회의 정치 몰락에 대한 박 씨의 분석과 조언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책은 제목 답게 정치 전반을 다룬다. 시대정신에서부터 갖가지 정치현상, 그리고 지도자와 정당을 다룬다. 특히, 지도자와 정당에 관한 부분은 새겨둘 만하다.

정치인을 '뽑는' 데만 열중할 게 아니라 '기르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정치가의 충원 시스템이 고장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말이다. 최소한 군인은 20세부터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인은 정당, 대학, 연구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길러지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당선되고 나서야 정치를 배우나. 국회는 '인턴 헌법기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얼마 전 한겨레21에서 한국의 정당은 '법조당'이라는 기획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정확한 지적이다. 정치인 충원 시스템이 부재하다보니 교수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 집단이 주로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건 정치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라고 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5%에 불과하다. 이들 5%로가 국민 전체를 대변하고 있으니 대의 정치가 제대로 실현될 리 없다. 

정치부 기자로서 민주당 공천 과정을 취재하면서 느낀 건 이런 거다. 공천은 곧 '영입'이라는 것. 공천심사위원도 밖에서 영입하고, 공천 대상자도 밖에서 영입한다. 영입은 어떻게 이뤄지나. 알음알음 추천을 받아 당 대표의 결단으로 이뤄진다. 당 내부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은, 훈련된 정치가는 존재하지도 않고 있더라도 관심을 받지 못 한다. 총선 한 두 달 전에 입당해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당의 이념이나 지향, 존재이유를 그들 낙하산 공천자들이 얼마나 체화하고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정당이 차세대 정치인을 발굴하고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한다. 버락 오바마나 데이비드 캐머런이 40대에 대통령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이는 40대일 망정 '정치연령'은 60대 이상이다. 

저자는 20대가 선출직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공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20대를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 훈련시킨 뒤 30대가 되면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훈련받은 이들이 국회의원에도 도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여성할당제처럼 20대나 30대를 위한 할당제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선진과 후진의 차이는 사람에 의존하느냐, 제도에 의존하느냐에 있다. 우리 정당들도 고도의 훈련된 정치가를 양성하는 제도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 시민의 권력이 강화되는 길

여의도에는 '권력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선출권력, 즉 국회의원의 권한이 약해지만 그만큼 비선출권력인 검찰, 사법부, 관료의 권한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정치인이다. 권력 총량의 법칙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사례는 아마도 FTA일 것이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통상 조약을 맺으면서 우리 대의기관은 조약의 내용도 제때 파악할 수 없었다. 통상관료들이 여러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하거나 미뤘기 때문이다. 국회의 검증기능도 관료들의 전문성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 대형 로펌이 전직 국회의원이 아닌 관료를 거액의 연봉을 주고 데려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그렇다. 로펌은 알고 있는 것이다. 관료들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는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두 배로 늘리자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에는 추가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만큼 국회가 행정부를 더 철저히 감시하고 국민세금이 엉뚱한 데 쓰이지 않도록 감시한다면, 이는 보좌관의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의 길은?

저자가 '정당의 위기'라는 현실진단에 대해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이 기능이 회복되고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정당의 '이익집단화'가 그것이다. 정당이 '자리'를 나눠먹는 사람들의 모임, 즉 동지가 아닌 동업집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익집단화는 이른바 '권력의 사유화'와 맞닿아 있다. 당을 대표하는 이념을 가진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출하기보다 당선가능성만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출하고, 여기에 줄을 대 나중에 한 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정당이 변질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선거 때마다 당을 해체하고 해쳐모여를 반복하면서 책임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거시저인 분석도 타당하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정당의 위기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당사일 것이다.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당사를 여러번 가게 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당사에 사람이 없다는 것. 물론, 당직자는 있다. 문제는 일반 시민이 또는 당원이 그곳에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든 민주든 통진이든 당사는 한국사회는커녕 지역사회와도 철저히 단절돼 있다. 최장집 교수가 여러 차례 지적했던, 사회에 착근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정당을 당사의 풍경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도 말미에서 지적하지만, 정당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 공동체'로서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정당도 (교회처럼) 시민을 상대로 법률 상담에서부터 문화 학교까지 재미, 정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생활 공동체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풀뿌리 구청장, 국회의원도 나올 수 있다.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야 혁명, 즉 비가역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짧은 경력이지만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한국 정치의 민낮을 마주하게 된다. 지도자, 지도자를 뽑는 시스템, 지도자를 키우는 정당,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게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그러나 누누이 강조하지만 정치는 여전히 힘이 세다. 또한, 우리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또한 정치다. 정치의 몰락은 우리 모두의 몰락인 것이다.


덧글

  • 2012/05/02 18: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2/05/15 16:39 #

    nevis 님,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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