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은 끝났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살며 생각하며

파업이 곧 끝난다. 언제쯤 끝날까 입버릇처럼 서로에게 묻곤 했는데 그날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는 집회에 나가고 구호를 외치는 일이 이미 일상이 돼서 돌아가는 일이 되레 어색하게 느껴진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파업을 접고 들어가는 데 만족해 할 조합원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버티기가 아닌,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하기에는 우리 힘이 부족했다. 파업을 하면서 노조가 사측을 이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동자가 가진 결정적인 힘은 공장을 멈추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공장을 멈추지 못했다. 약 500여명의 기자 중에서 파업 참가자는 160여명에 불과했다. 9시 뉴스의 시청률은 여전히 20%를 넘나들었다. 노조가 둘로 쪼개져 있는 이상 앞으로도 우리 파업은 이기기 힘든 싸움이 될 게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파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 파업의 명분과 이유에 대해서 더 많이 듣고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부러 의구심을 갖았다. 임기가 다 돼 가는 이 시점에 특보 사장을 몰아내자고 하는 이유는 뭔가, 전임 정연주 사상 때도 사장이 보도에 관여하는 일은 있지 않았나 등등. 묻고 답하기를 여러 차례, 파업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서서히 생겨났다. 집회에 참석하는 일도 처음에는 '면피성'이 짙었다. 3일 연속으로 나왔으니 하루쯤은 빠져도 되겠지 하는 게 내 태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파업은 온전히 '나의 싸움'이 돼 갔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사무쳤다.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행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진정 행동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고 성장한다.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그때가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기억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진정한 내공은 경험에서 나오는 법이다. 나는 언제나 치열하게 살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치열하게 살 수 있느냐고 자문해왔었다. 그 답을 이번 파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동료 선후배가 뭔가를 함께 하자고 하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 때 치열하게 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3월에는 예능 쪽에 주로 몸 담았다. 해질녁이 되면 동기들과 연구동 옥상에 올라 나란히 서서 문선 연습을 했다. 저쪽에서 해가 지고 있었고, 내 일터였던 국회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국회의 분주함과 이곳의 평온함이 대조를 이루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3월 말에는 '태생적 진지함'으로 몸이 무거운 내가 동기 녀석과 함께 개근 콘서트를 패러디 해 무대에 올랐다. 그때를 계기로 그 동기와 무척 친해졌다. 처음에는 사내 집회용으로 준비했는데, 호응이 좋아 결국 2만여명이 모인 큰 무대에 서게 됐다.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 천막 안의 긴장된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4월에는 보도 쪽에 무게중심을 뒀다. 리셋 KBS뉴스팀에서 선배들과 함께 취재하고 리포트를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진경락을 만나기 위해 며칠에 걸쳐 '뻗치기'를 했던 일이다. 새벽부터 마곡동의 한 이름 모를 아파트에서 뻗치기를 시작했다. 기다리던 사람이 나가면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하듯 몰래 뒤를 좇았다. '이명박 친인척 위장전입' 리포트도 기억에 남는다. 이 리포트에서도 핵심은 사람 찾기였는데, 무려 20년 전에 거주했던 사람이라서 만나기가 사실상 어려워보였다. 일단 등기부 등본을 떼고 부동산도 수소문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집집마다 초인정을 누르고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우연히 단서를 확보했고 결국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5월에는 공부를 하려고 했다. 불과 작년만 해도 언론사 스터디를 하던 카페에서 이렇게 책을 읽으니 기분이 요상했다. 꽤 많은 책을 건드렸지만 어떤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은 별로 없었다.

파업은 끝난다. 잠정 타결 소식이 자막으로도 전해졌다. 파업 기간 동안 많은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특히 기억나는 게 있다. 기사와 관련된 논쟁에서 만큼은 부장이든 팀장이든 평기자이든 계급장 떼고 '저널리스트 대 저널리스트'로 논쟁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지만 내게 깨달음을 준 문구가 있다. "정의로운 행동을 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용기있는 행동을 하면 용기있는 사람이 된다."(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렇다. 결국은 행동이다. 아무리 저널리즘을 떠든다고 한들 저널리스트 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저널리스트가 될 수 없다. 그만큼 저널리스트가 되는 길은 어렵다. 이제부터 그 어려운 길을 열심히 가야 한다.


덧글

  • 이스릭 2012/06/08 02:39 # 삭제 답글

    우리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 고생 많았어.
  • 이스릭 2012/06/08 03:11 # 삭제 답글

    근데 파업참가자 160명보다는 더 될걸. 총원도 5백으로 단순하게 보기엔 좀. 팀장급 이상 간부들과, 지역기자 빼면 본사 보도국 평기자들은 300이 안될거고, 그중 절반이상은 참가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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