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혼이라고 불리는 게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전부가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다'는 도전적인 문제 제기로 시작한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상상의 관념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싱글리즘(singlism)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이미지는 화려한 싱글 아니면 고독사라는 양 극단으로 나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하거나 그렇지 못 하면 고독사 할 수밖에 없다는 "담론의 협박" 속에 사람들은 결혼을 당위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1인 가구는 더 이상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생애주기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비혼자의 숫자만큼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1인 가족이 크게 늘고 있다. 핵가족이라는 표준 가족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 이게 나쁜 건 아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했던 가족 중심성이 악화되는 징후"일 뿐이다. 우리의 일대기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개인의 결정에 열려있다. 우리 시대의 집단 심성은 '개인화'다.
하지만 이렇게 1인 가구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혼자라는 사실을 위로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로맨스는 어려워지고 있다. 로맨스는 "패스트 패션의 경향과 유사해졌다." 소개팅을 하든 뭐를 하든 만나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로맨스의 기회가 빈번해진 만큼 우물쭈물 대면 상대방은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나버린다. 하지만 설사 연애를 시작해도 금방 식는 다는 게 다시 고민이다. 로맨스에 제동을 거는 "제도의 훼방꾼은 사라졌음에도 결혼을 결심할 정도의 낭만적 사랑은 점점 어려워지게 됐다." 로맨스가 과거와 달리 빈번해질수록 로맨스가 부재한 상황에 대한 불안은 더 커진다.
결혼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은 점점 결혼이 부여하는 역할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되는 순간 우리의 자아는 또 하나의 '연극적 자아'를 갖게 된다. 남편으로서 부인으로서 아버지로서 훌륭한 연기를 펼쳐내야 한다. 특히, 관습적 성별 분업 내에서 여성들은 결혼이 '손해'일 수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결혼 생활에서 조건 없는 "평화의 사도"가 되는 데 싫증을 내고 있다. 반면, 남성들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저자는 1인 가구로 살 가능성이 모든 생애주기에서 커진 만큼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물론, 혼자 사는 데도 물적 조건이 필수다. 하지만 저자가 초점을 두는 건, 주로 정신적인 측면이다. 기본 명제는 이렇다. 스스로 사고 하기 위해서, 가족이 부여하는 연극적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혼자가 돼야 한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등등을 언급하며 그들이 평생 독신이었으며 혼자 됨의 기회를 통해 뛰어난 철학적 성취를 해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고독은 나의 힘'으로 승화된다. 이런 류의 고독 예찬은 정말이지 와 닿지 않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사상가 중에 여성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었다"고 버지니아 울프가 일갈한 것처럼.
이런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일본과 스웨덴을 비교한 점이 좀 더 와 닿았다. 두 나라 모두 1인 가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선 고독사가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웨덴은 1980년대부터 복지정책의 주요 방향 가운데 하나로 '탈 가족화'를 내세웠다. 붕괴되는 가족 안정성을 억지로 막기 보다는, 아예 탈 가족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하고 모두가 '혼자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게 고립은 아니다. 집단주의와 공동체의 건강성은 전혀 다른 얘기다. 오히려 개인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집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개인 간 교류야말로 바라직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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