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그리고 저널리즘의 침몰 살며 생각하며

진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만 해도 수십 번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이왕 가는 거 뭐라도 의미있는 보도를 해오고 싶다고. '의미있는 보도'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정부 발표에 대한 받아쓰기식 보도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보도를 내가 구태여 반복하다가 돌아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더니 결국엔 스스로 하루살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뭐 하나 말 거 없나'만 생각하는 하루살이. 시야는 좁아지고 고민은 얄팍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또,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현장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지만 취재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어제와는 또 다른 영역을 취재해야했습니다. 이를 테면 하루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취재하고 다음날은 선체 인양 작업을, 또 다음날에는 시신 유실 방지 대책을 취재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취재원도 매일 바꼈고 관련 지식은 쌓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 팩트'가 쏟아지는데 매일 다른 영역을 취재하려니 기존에 나온 기사들을 검색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데 급급했던 겁니다. 한정된 시간에 이렇게 얄팍한 취재만 하다보니 기존 취재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기획 보도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기획보도를 못한 건 일차적으로 취재기자인 제 책임입니다. 뼈저린 자기 반성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취재기자 운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두서없이 총을 쏘기 보다는, 취재영역에 따라 1~2,3진을 두고 한 분야만 파게 했다면 연속성 있는 취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겁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기자들이 일주일 넘게 진도에 머물렀지만 그 누구도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해도 핫라인이 없었고, 당연히 제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팽목항에서 둥둥 떠다녔을 뿐 취재기자로서 뿌리를 내리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숨진 학생의 휴대폰에서 복원한 영상을 타사에 넘긴 건 우연이 아닙니다. 뼈아픈 일입니다. 

또, 현장 취재기자가 주로 경험이 부족한 38~40기로 짜여진 것도 문제였습니다. 선배들은 '기사가 생물'이라고 합니다. 취재과정에선 야마가 180도 바뀔 수 있는 게 기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취재과정에서 언제든 상의할 수 있는 선배들이 있을 때 얘기입니다. 1~2,3진 체계가 없다보니, 혼란스러운 취재현장에서 막내급 기자들은 혼자 고민하며 끙끙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데스크에게 전화를 거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데스크는 바빴습니다. 이렇다 보니 주로 총을 맞고 아이템을 취재했던 40기들의 마음고생이 특히 컸습니다. 물론, 현장에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중견급 선배들이 있었지만, 각개약진해야 하는 시스템에선 선배들도 이래라 저래라 한 마디 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인력은 많았지만 따로 뛰는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낮설지 않습니다. 꼭 세월호 취재 현장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문젭니다. 취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신문 조간이나 석간에서 제목을 따와 제작하는 '앉은뱅이' 발제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지금 시스템에선 어찌 보면 불가피합니다. 과연 뭐가 옳은 것일까요. 지금처럼 아이템을 최대한 늘려서 그 수만큼 취재를 할당하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아이템 수를 줄이더라도 취재기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현장에 머물게 하고 거기서 의미있는 아이템을 건져올리게 하는 게 옳을까요. 뭐가 장기적으로 우리 뉴스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 답은 이미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 다 나온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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